도마가 ‘의심 많은 제자’라고요?
12제자 중에 도마를 ‘의심 많은 제자’라고 사람들은 부른다. 그러나 성경에서 보여 지는 도마는 전혀 그렇지 않음을 발견하게 된다. 예수께서도 도마에게 “왜 의심하였느냐?” 혹은 “의심 많은 자”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다. 오히려 물위를 걷다가 물에 빠져가는 베드로의 손을 잡아 붙잡아 주시며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마14:31)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엠마오를 향하던 두 제자는 예수님의 부활을 처음엔 믿지 않았다. 또한 다른 예수의 부활을 전해 들은 다른 제자들도 믿지 않았다(막16:13).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11제자들에게 나타셔서 부활을 증거한 자들의 말을 믿지 않은 제자들을 전부를 꾸짖으셨다(막16:14). 즉 예수의 부활하심의 말만 듣고서 믿었던 제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예수께서 승천하시기 전, 11제자들과 함께 갈릴리 산에 올라서 마지막 지상명령을 하실 때에 그 제자들 중에는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오히려 의심하는 자(제자들)도 있더라(마28:18)”라고 성경은 분명히 말해 주고 있지 않는가? 그러므로 도마에게 ‘의심 많은 자’라는 별명은 적합지 않다. ‘도마가 예수의 손과 옆구리를 만져 본 후에야 믿었다’라고 말하는 것은 성경에도 기록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도마를 의심 많은 자로 비하시켜 버리는 일이다.
성경에 나타나는 도마의 성격와 인품을 살펴보자.
공관복음(마태,마가,누가)에는 도마의 이름이 12제자의 명단 중에 기록되어 있을 뿐이지만, 요한복음에는 도마에 관한 이야기가 3번 기록되어 있다. 요한복음서는 사도 요한이 기록한 책으로 성경 중에 가장 늦게 기록된 책 중의 하나이며, 공관복음에 기록되지 않았던 부분을 보충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여기에 도마, 베다니 마리아, 막달라 마리아 등의 이야기가 들어 있다. 그럼 요한복음에서 보여주는 도마에 관해 살펴보자.
▲<도마의 의심>이라는 카라바조의 작품.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도마의 모습이기도 하다. 하지만 성경은 도마가 실제로 예수님의 몸을 만졌다고 기록하고 있지 않다. |
첫번째 도마 이야기 (요한복음 11장 16절) — “공동체 의식이 강한 자” “의협심의 사나이”
요한복음 11장은 예수께서 나사로를 다시 살리신 사건이 나온다. 마르다와 마리아가 오라비 나사로가 병들었을 때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오셔서 고쳐달라는 요청했음에도 예수께서 곧바로 오시지 않으시고 이틀을 지체하셨다. 그 후에 예수께서 ‘유대로 다시 가자’(7절) 말씀하시니, 제자들이 ‘랍비여 방금도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하였는데 또 그리로 가시려 하나이까?’(8절)라고 말하며 가지 말자고 했다. 예수께서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깨우러 가노라’(11절) 하시니, 제자들이 ‘주여 잠들었으면 낫겠나이다’(12절) 말하면서 유대로 다시 갈 필요를 없다고 말했다. 예수께서 ‘나사로가 죽었느니라.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그에게로 가자’(14-15절)고 말씀하셨다. 이때에 도마는 다른 제자들에게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16절)고 말한다. 어떤 이들은 도마가 ‘빈정대면서’ 혹은 ‘체념하면서’라고 말했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성경을 자세히 보면 전혀 그렇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선생님은 ‘가자’하고 제자들은 ‘가지 말자’하는 상황에서 도마는 ‘가지 말자’하고 있는 동료들을 종용하면서 주님과 함께 가자고 말했던 것이다. 여기에 반하여 최후 만찬석상에서 베드로는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마26:33)’,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요13:36)라고 말했지만, 그 베드로는 예수께서 잡히시니 세 번씩이나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한 것이다. 베드로는 ‘나는’이라 표현을 하는 데 반하여, 도마는 분명히 공동체 의식이 강한 자였기에 ‘함께’라는 말을 사용했다. 베드로는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라고 말했지만, 도마는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고 한 것을 보면 공동체의 연합을 위한 공동체 의식이 아주 강한 자였으며, 죽으면 죽으리라 하는 의협심이 강한 자였음을 볼 수 있다.
두번째 도마 이야기 (요한복음 14장 5절) — “솔직한 자”, “학구적인 자”
요한복음 14장은 예수께서 최후 만찬을 하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후에 제자들에게 강화를 시작하시는 내용이다. 이 때 예수께서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2절), 가서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내가 가는 곳에 그 길을 너희가 알리라.(2-4절)”고 말씀하신다. 이때 도마가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무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삽니이까?(5절) 질문을 했으며, 예수께서 그 답으로 성경 전체에서 가장 Powerful한 말씀인,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6절)”라고 대답하셨다. 그 만찬석에 함께 앉아 예수의 말씀을 듣고 있던 제자들 중에 어느 누구 한사람도 예수의 하신 말씀을 깨달았던 자들이 있었던가? 도마는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솔직히 질문하였던 자이다. 다른 제자들처럼 모르면서도 가만히 있거나 아는체하는 자가 아니요 진실한 자였음을 볼 수 있다. 모르는 것을 알고 싶어하며 진리를 추구하는 학구적인 자였다.
세번째 도마 이야기 (요한복음 20장 24절) — “왕따 당한 자”, “십자가의 사건의 목격자”
요한복음 20장에는 부활하신 예수께서 10제자(도마가 없었음)들이 모인 가운데 나타나심과 그 일주일이 지난 후 11제자(도마도 함께 있었음)에게 다시 나타나신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필자는 왜 처음 사건에는 도마가 빠져 있었고 두 번째 사건에는 도마도 있었는가를 생각해 보았다. 그 원인이 무엇일까? 모든 사람들은 공동체 생활을 좋아한다. 혼자 살기보다 함께 살아가길 원한다. 그래서 공동체를 이유 없이 떠나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러므로 공동체를 떠나간 사람들을 함부로 비방하거나 그 공동체에서 누군가를 왕따시키는 일을 삼가야 한다. 예를 들면, 가정, 교회, 공동체를 떠났다고 그 사람을 함부로 정죄하거나 비방해서말하는 것을 삼가야 한다. 어쩜 떠난 자의 잘못이 아니요 함께 있었던 자들의 잘못일 수도 있다. 필자는 도마의 경우가 그랬을 것이라고 사고되는 데 어떻게 되어서 도마가 공동체를 떠나게 되었을까 생각해 보자.
도마는 공동체 의식이 강한 자였기에 ‘우리 함께 죽으러 가자’해서 예수와 함께 제자들 모두가 유대에 다시 가게 되었는데 결국 예수는 잡혀 죽임을 당하였다. 이런 상황이 벌어지자 다른 어느 누구보다도 도마는 부담감이 컸으며 자기가 함께 가자고 말하지 않았더면, 그리고 우리도 함께 죽으려 가자고 말했음에도 예수는 죽임을 당했고 자기는 도망쳤다는 사실에 죄책감에 사로 잡혔다. 이러한 상황에서 공동체에서 자기를 위로 해 주는 자는 없고, 혹시 “네가 함께 가자고 했지” 말하며 모든 책임을 도마에게 전가하는 누군가가 있었다면 분명히 도마는 다른 제자들과 함께 있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바로 도마는 왕따 당한 자였거나 아니면 깊은 죄책감에 사로 잡혀 있었기에 공동체를 사랑했던 도마는 그 공동체를 떠나야 했던 것이다.
요한복음 20장 25절을 자세히 보자.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가로되 ‘내가 그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하니라” 라고 말씀해 준다.
이는 도마가 사도 요한이 아닌 다른 제자들을 만나 대답한 것이다. 여기서 만약 사도 요한이 도마에게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말했었다면 도마는 ‘그래 언제 어디서 만났느냐?’고 물었을 것이다. 왜냐면 도마는 사도 요한과 같이 십자가에서 벌어진 사건을 다 보았던 목격자이기 때문이다. 본문이 그것을 증명해 주고 있다. 도마는 십자가 사건의 목격자이기 때문에 ‘내가 그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으로 만져 손과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않겠다’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도마가 목격자가 아니었다면 아무도 말해 주지 않았는데 어떻게 옆구리를 창에 찔림까지 알 수가 있었겠는가? 도마는 십자가를 두고 도망친 제자들이 말하니 그들에게 예수의 달리신 모습을 설명해 주었던 것이다. 아마 도마와 저들의 계속된 대화중에 저들이 모였을 때 주님께서 손과 옆구리를 보이셨던(요20:20) 것을 말해 주었을 것이며, 이로 인해 도마는 저들의 모임에 동참하게 되었던 것이다.
도마의 가장 정확하고 깊은 신앙고백 “나의 주시오, 나의 하나님이시다”(요20:28)
주님이 나타나사 ‘나를 만져보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도마가 직접 만졌다는 기록은 없다. 도마는 ‘나의 주시오, 나의 하나님이시다’라고 신앙고백을 했다. 필자는 성경에 기록된 여러 신앙고백 중에 도마의 고백이 가장도 정확하고 깊은 고백이라고 생각한다. 왜냐면 베드로의 고백에는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다’라고 말하지만 도마의 고백은 ‘예수가 하나님이시다’라고 고백한다. 이 고백은 예수가 하나님의 본체이시지만 위가 다른 하나님이심을 깨달았던 즉 삼위일체 하나님(Trinity)의 비밀의 장을 처음 열어 보여준 고귀한 신앙고백이다.
요한은 요한복음을 통해서 자기 친구 도마의 이야기를 3번씩이나 기록하면서 도마를 빈정대거나 체념 잘하거나 의심 많은 자로 부각하려고 기록하지 않았다. 오히려 공동체 의식이 강하고 의협심이 강한 친구, 솔직하며 학구적인 친구, 십자가 사건의 목격자이며, ‘함께 가자’ 말했기에 왕따 당했던 친구, 그리고 요한 자기 보다 더 먼저 가장도 정확하고 깊은 신앙고백을 하였던 동료 친구로 소개시키길 원했지 않겠는가?
혹시 본 기사에 의문이 있으신 분은 atlantabc@gmail.com 으로 문의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