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
9월 11일에 개봉한 영화 ‘관상’이 개봉 17일 만에 750만 관객을 돌파했다. 왜 이렇게 이 영화가 인기가 있는가? 그것은 역사적 사건을 무한한 상상력과 새로운 시각으로 재해석해 현시대를 풍자한 것과 관상을 믿는 사람들의 심리, 그것이 사회생활 혹은 인간관계에 미치는 심리적 영향 등을 잘 다루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이 영화가 다루고 있는 관상에 거부감을 나타내고 결코 기독교적이지 않으며, 어떤 방법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생김새가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반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작 그렇게 이 영화를 평가하기엔 섣부른 면이 있다. 왜냐하면 이 영화가 말하고 있는 진정한 관상이란 마음속의 거울, 즉 얼굴의 겉모습만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과학 전문가들도 관상을 통해서 사람의 미래를 마법처럼 예측할 수 없지만, 얼굴로 드러나는 성격과 건강을 통해 가까운 미래를 조언할 수 있다고 한다. 그것은 사람의 수십 년간 이어진 습관, 표정을 담은 얼굴에서 그 사람의 성격과 대인관계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관상을 보신다? 성경에서도 관상에 대하여 언급하는 곳이 있다. 하나님의 명을 따라 기름 부을 자를 찾아 나선 사무엘이 다윗을 만나 그의 용모를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삼상 16:12), 또, 블레셋과의 전투에 나온 다윗을 ”그 블레셋 사람이 둘러보다가 다윗을 보고 업신여기니 이는 그가 젊고 붉고 용모가 아름다움이라“(삼상 17:42)라며 묘사하고 있다. 물론 사무엘은 다윗이 용모가 아름다웠기 때문에 기름을 부은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성경은 “다윗의 얼굴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라는 것을 기록하여 하나님은 다윗의 용모를 보고 바로 ‘그’라고 선택하셨다는 뉘앙스를 갖게 한다. 육체의 아름다움을 지키라 같은 아름다움이라도 중심이 드러나는 아름다움과 중심이 드러나지 않는 아름다움이 있다. 다윗의 맏형 엘리압의 용모와 키는 천성적으로 타고난 아름다움인 반면에 다윗의 아름다움은 주어진 일에 성실함을 더하여 얻게 된 아름다움 이었다. 다윗은 맡겨진 일을 위해 육체를 단련시키고 아름다움을 잘 지킨 것이다. 현대어 성경은 사무엘상 16장 12절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혈색이 좋고, 눈에는 총기가 넘쳐흐르는 잘생긴 소년”. 다윗은 양을 치는 일을 했다. 양을 치다보면 햇볕에 얼굴이 그을리고, 또 먼 곳에 있는 양을 보다 보면 그 시력이 좋을 수밖에 없다. 만약 다윗이 게을렀다면 그런 아름다운 용모를 갖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심령의 아름다움을 지키라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기름 부를 자를 선택할 때 사람의 외모를 보지 말고 사람의 중심을 보라고 하셨다. 그런데도 사무엘상 16장 12절을 보면 정작 사무엘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을 다윗의 아름다움을 묘사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 나타난 아름다움은 단순히 겉으로 드러난 아름다움만 아니라 내면(심령)을 통하여 나타난 아름다움이다. 다윗의 그을린 피부, 빼어난 눈, 아름다운 용모는 그냥 얻게 된 것이 아니다. 양을 지키라고 명한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해서 얻게 된 것이다. 사무엘상 17:33에서 다윗은 “주의 종이 아버지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 떼에서 새기를 물어 가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 죽였나이다”라고 말했다. 여기서 다윗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볼 수 있다. 그의 마음에는 항상 여호와 하나님이 계셨다. 다윗은 자신을 부를 때 ‘주의 종’이라고 했다. 심령의 아름다움을 지키는 것은, 자신의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고, 그 일을 위해 하나님과 동행하며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입술의 아름다움을 지키라 사무엘이 기름 부을 자를 택하는 면접시험에서 그는 관상만 보았다. 오늘날의 면접시험 같으면, 이력서도 보고, 관상도 보고, 말도 걸어 대답도 들어 보았을 테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다윗은 과연 어떤 사람이었기에 그렇게 하나님께서 다윗을 기름 부을 자로 지목하셨나’라는 궁금증을 갖게 한다. 그러나 그런 궁금증은 곧 해결 된다. 사무엘상 16장 18절에서 다윗을 “수금을 탈 줄 알고 용기와 무용과 구변이 있는 준수한 자”라며 다윗이 언변이 뛰어난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고, 17장 45~47절에서는 전쟁의 급박한 상황에서도 정제된 언어로 골리앗 앞에서 자신의 감정을 잘 표현하는 다윗의 모습을 보여 준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아나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사람의 감정은 그 사람의 말을 통하여 표현된다. 말은 사람의 인격이다. 다윗의 말에도 그의 인격이 묻어 나왔다. “여호와여 내 입 앞에 파숫군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시편 141:3). 이 말씀은 우리가 평생 되새겨야 할 말씀이다. -페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