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 있는 삶
오래전에 EBS 방송에서 한 섬주민을 대상으로 실험한 내용을 방송한 것이 기억난다. 그것은 일정한 기간 텔레비전을 못 보게 하여 마을 사람들의 생활에 어떠한 변화가 있는지를 알아보는 것이었다. 섬이라는 특성 때문에 문화생활을 할 수 없는 주민에게는 텔레비전이 유일한 문화생활이요 정보를 받아들일 수 있는 통로였다. 그런데 텔레비전을 못 보게 하니 저마다 길고 긴 저녁 시간에 도대체 무엇을 하며 어떻게 시간을 보낼지 모르거나 당황하였다. 그러나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니 차차 사람들이 적응하고, 마을 사람들끼리 모이는 시간이 많아져 서로 교제도 하고 식구끼리는 정이 돈독해 지기도 하였다.
실험이 끝나고 텔레비전을 각 가정에 돌려주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하는 말이 “휴, 이제는 살았다, 심심해 죽는지 알았는데.” 그러나 어떤 한 분은 이렇게 말했다. “텔레비전도 안 보니까 흥미가 안 생기던데” 그 재미있던 연속극도 못 보니까 처음에는 궁금하고 미칠 것 같았는데 며칠 안 보니까 취미가 없어졌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텔레비전이 그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이유가 있었는데 그것은 세상이 돌아가는 소식을 텔레비전을 통하여 보고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비전’이라는 영어단어가 그리 잘 쓰이지 않는 시절에 이미 우리나라에는 텔레비전이라는 기계를 통하여 비전이 각 가정에 다 들어갔다. 그것도 그냥 비전이 아니라 ‘텔레비전’이다(‘tele’은 그리스어로 ‘멀리’라는 뜻이고 ‘Vision’은 라틴어로 ‘본다’라는 뜻). 말 그대로 텔레비전을 통해서 먼 곳에서도 볼 수 있도록 하여 준 것이 텔레비전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텔레비전은 먼 곳에서 보기 위한 것뿐만 아니라 멀리 내다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예전에 어떤 사람은 텔레비전을 바보상자라고 말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텔레비전을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바보취급을 당한다. 요즘 텔레비전은 스마트 TV이다. 말 그대로 사람을 영리하게 만들어 준다. 텔레비전은 우리에게 지식과 정보를 가져다줄 뿐 아니라, 생활을 매우 편리하게 해준다. 사람들은 이렇게 텔레비전을 통해 멀리 내다보며 안정을 찾고 있다. 그러니까, 보긴 보되 멀리 보는 것, 예측하여 행동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기대하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비전이 하는 역할이다.
비전은 구체적이면 구체적일수록 좋다. 그러나 대부분 신앙생활을 오래 한 이들을 보면 믿음이 좋아서 그런지, 뚜렷한 비전이 없이 그저 살아가는 것 같다. 신앙생활이란 무엇인가? 나는 그것을 비전 생활이라고 말하고 싶다. 예수님 믿기 전에는 아무런 비전 없이 살았는데 이제는 그분을 통하여 뚜렷한 비전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 예수님을 알기 전에는 잘못된 인생의 목적을 가지고 살았는데 예수님 만나고 바른 인생의 목적을 발견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앙생활을 잘하려면 비전 생활도 잘해야 한다. 올바른 비전을 가지고 그 비전을 바라보며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살아갈 때 성공적인 인생을 살 수 있다. 사람이 불행하게 사는 가장 큰 이유는 뚜렷한 비전이 없기 때문이다. 물질적인 욕심은 모두에게 있으나 거룩한 영적인 비전이 없는 것이 오늘날의 문제이다. 우리는 바른 비전을 가져야 한다.
신앙의 본질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이다. 신앙의 본질은 하나님이 주신 더 좋은 미래와 더 좋은 삶을 향해 끝없이 달려가는 것이다. 참된 믿음은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빌 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