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티스마(침례) : 분명한 사실들
밥티스마(침례) : 분명한 사실들
Michael R. Dixon
옮긴이 : 임 재 영
1장 밥티스마의 의미
(지옥은 사람들을 위하여 만들어지지 않았다.)
2장 밥티스마의 종류
(그들의 행위는 다른 이야기를 말하고, 성경이 말하는 복음과 다른 복음을 묘사한다)
3장 밥티스마의 자격
(유아 신자)
4장 밥티스마의 동기
(그리스도와 동일시되기 위하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에 복종하는 것이다.)
5장 밥티스마에 관한 허위
6장 결 론
서 론
성경기록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다.
“주님도 하나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밥티스마, 침례)도 하나요” (엡 4:5)
오늘날, 극단에서 극단으로 치달으며, 밥티스마(침례;세례)에 관한 많은 말들이 있다. 어떤 이는 밥티스마가 당신을 구원한다고 말하고, 다른 이는 예수 그리스도와 밥티스마가 당신을 구원한다고 말한다. 어떤 이는 밥티스마가 죄를 씻는다고 말하고, 다른 이는 원죄를 씻는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무엇이 진리인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것은 단순하다, 다만 성경으로 가서, 성경을 연구하라. 그리고 성경이 당신에게 말하는 바를 보라. 이 책의 전체 의도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성경적 진리를 보여주는 것이다.
어떠한 방법이나 형태로든, 혹자의 믿음을 놀리려는 의도는 없다. 다만 성경이 말씀하는 바를 보여주고자 한다. 의심할 여지없이 어떤 이는 기분이 상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성경이 말하는 바를 받아들이든지 거절하든지 결정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권위이다.
이 책을 통하여 성경기록의 대문자는 강조하기 위하여 사용되었다.
1 장 : 밥티스마의 의미 [top]
1.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
밥티스마는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가 죽고, 장사되고, 부활하는 것을 보여준다. 밥티스마는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위하여 사망을 이기신 그분의 부활을 묘사한다. 밥티스마는 우리가 구원받기 전 옛사람(그리스도 없이 죄 가운데 살았던 삶)의 죽음과 옛 생명의 장사지냄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사는 새생명의 부활을 묘사한다.
“여러분은, 그리스도 예수와 연합하는 세례(밥티스마, 침례)를 받은 우리 모두가, 그분의 죽으심과 연합하는 세례(밥티스마, 침례)를 받았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의 죽으심과 연합하는 세례(밥티스마, 침례)를 받음으로써, 그분과 함께 묻혔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아버지의 영광으로 살리심을 받은 것과 같이, 우리도 새로운 생명 가운데서 살아가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죽음으로 그와 연합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또한 분명히, 그의 부활하심과 같은 부활로 그와 연합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롬 6:3~5)
1) 우리가 죽은 이유
“여러분도 전에는 범죄와 죄로 죽었던 사람들입니다,”(엡 2:1)
“범죄로 죽었던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려 주셨습니다. 여러분은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엡 2:5)
밥티스마의 첫 번째 부분은 우리의 죄를 위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보여준다. 그것은 구원받기 전에 하나님 보시기에 우리가 영적으로 죽어 있었음(우리의 옛 사람)을 묘사한다. “옛 사람”은 아담의 죄 때문에 죽었다.
“그러므로 한 사람을 통하여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또 그 죄를 통하여 죽음이 들어온 것과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죽음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게 되었습니다.”(롬 5:12)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므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합니다.,”(롬 3:23)
아담은 고의로 열매를 먹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대적하여 죄를 범했다. 그 결과 그는 즉시 영적으로 죽었다. 동시에 육체적인 죽음의 과정도 시작되었다. 아담이 죄의 본성을 그의 자녀에게 전해 주었을 때, 사망이 모든 사람(인류)에게 전해졌다. 우리는 우리의 행한 바(what we DO) 때문에 죄인일 뿐 아니라 우리의 본성에서(what we ARE) 죄인이다. 예를 들겠다.
“개가 짖어대기 때문에 개인 것이 아니라 개이기 때문에 짖어대는 것이다. 또한 사과나무는 사과를 맺기 때문에 사과나무가 아니라 사과나무이기 때문에 사과를 맺는 것이다. 우리가 죄를 짓기 때문에 죄인이 아니라 죄악된 성품을 가졌기 때문에 죄를 짓는다.”
2) 우리의 죽음의 결과
우리의 죄성(罪性)으로 말미암은 죄의 결과는 하나님과의 분리이다. 영원한 죽음은 우리의 죄의 공로로 얻는 것이다. 그것은 지옥에서의 영원이다. 성경은 말하기를 “죄의 삯은 죽음이요, 하나님의 선물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영원한 생명입니다..”(롬 6:23)
· 삯 = 번 것(소득) 또는 보수
· 죄 = 당신의 상태이며 당신이 범하는 것
· 사망 = 육체적 영적 분리
“그리고 사망과 지옥이 불바다에 던져졌습니다. 이 불바다가 둘째 사망입니다. 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누구나 다 이 불바다에 던져졌습니다.”(계 20:14~15)
하나님은 죄인을 미워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우리가 범하는 죄는 미워하신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하늘에 있는 그분의 존전에 죄가 있을 수도, 있게 될 수도 없기 때문에, 죄는 우리를 하나님과 분리시킨다. 그 죄는 우리가 하늘에 들어가기 전에 반드시 제거되어 한다.
지옥은 사람들을 위하여 만들어지지 않았다. 지옥은 사탄과 그의 천사들(마귀)을 위하여 만들어졌다. 사람의 타락 후, 죄 때문에 지옥은 하나님께서 죄의 형벌로 혼을 던져 놓는 편리한 장소가 되었다.
“그 때에 그는 또 왼쪽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말할 것이다. ‘저주받은 자들아, 내게서 떠나서, 악마와 그 부하들을 가두려고 준비한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거라.”(마 25:41)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실 것이다. 그 포도주는 물을 섞어서 묽게 하지 않고 하나님의 진노의 잔에 부어 넣은 것이다. 또 그런 자는 거룩한 천사들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통을 받을 것이다,”(계 14:10)
우리는 성경에 의해 사람이 죄의 성품을 가지고 태어나며, 지극히 거룩하신 하나님의 눈에 영적으로 죽었다는 것을 보았다. 우리가 죽었기 때문에, 우리가 육체적으로 죽을 때 지불되지 않은 죄의 형벌과 함께, 하나님께서는 영적인 죽음, 곧 둘째 사망인 영원한 지옥에서 그 죄에 대한 형벌을 내리지 않을 수 없다. 어떤이들은 하나님께서 단지 일생의 죄 때문에 사람에게 영원한 형벌을 내리시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친구여, 당신이 얼마나 오랫동안(HOW LONG) 죄를 지었는지가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죄의 크기(TO WHAT EXTENT)이다. 살인죄를 저지르는데 5 초가 걸린다. 강도는 3 시간 걸린다. 그렇다고 재판관이 살인자에게 5일 간의 구류를, 강도에게 3년을 선고할 수 없지 않는가! 하나님의 눈에는 작은 죄일지라도 그분께는 심각한 범죄이다. 그 죄가 우리를 하나님의 거룩으로부터 분리시킨다.
2. 예수 그리스도의 장사됨
밥티스마가 보여주거나 묘사하는 두 번째는 예수 그리스도의 장사됨이다. 이것은 우리가 구원받기 전에 살았던 옛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묻히는 것이다. 잠기는 것은 장사되는 것을 묘사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의 죽으심과 연합하는 1)세례를 받음으로써, 그분과 함께 묻혔습니다.,–“(롬 6:4)
1) 옛사람으로부터 회개
장사됨, 곧 옛사람을 매장하는 것은, 옛사람(죄)으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로 회개한 결과이다.
“우리는, 우리의 옛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달려서 죽은 것이, 죄의 몸을 멸하여서, 우리가 다시는 죄의 노예가 되지 않게 하려는 것임을 압니다. 죽은 사람은 이미 죄의 세력에서 해방되었습니다..”(롬 6:6~7)
옛사람으로부터 돌아서서, 당신이 죄인임을 고백하는 것이다.
“입으로 예수는 주님이라고 고백하고,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마음으로 믿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롬 10:9)
만약 당신이 진정으로 원한다면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단순한 기도로 능히 가능하다.
“누구든지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롬 10:13)
· 누구든지 = 모든 사람, 누구나
브레인 건닝
·부르다 = 구하다, 그분을 모셔들이다
· 구원을 받음 = 다시 태어남, 회개함
2) 옛사람으로부터 해방됨
“그러니 한 사람의 범죄 행위 때문에 모든 사람이 유죄 판결을 받았는데, 이제는 한 사람의 의로운 행위 때문에 모든 사람이 의롭게 하여 주심을 받아서, 생명을 얻었습니다.”(롬 5:18)
따라서, 아담의 죄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정죄를 받았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의롭다 여김을 받을 수 있다.
앞 구절을 주의 깊게 읽으면 아담에 의한 “한 사람의 범죄”로 심판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심판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된다. 계속하여 읽으면 칭의가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 “한 사람의 의”로 말미암아 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당신이 알다시피 칭의는 거저 주시는 은사이다. 은사는 (은사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주어지는 것이지 버는 것이 아니다.
칭의가 버는 것이라면 삯이 된다. 칭의는 또한 되돌려 받을 수 없는 것이다. 준 사람에 의해 되물려지는 것은 결코 은사가 아니다.
은사는 반드시 받아 들여야 한다. 은사를 얻기 위하여 반드시 손을 뻗쳐서 그것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를 맞아들인 사람들, 곧 그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다.”(요 1:12)
3.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밥티스마의 세 번째 부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묘사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로부터 일으켜 세워지심 같이, 우리도 이전의 사망(옛사람)으로부터 일어나 영원한 생명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의 죽으심과 연합하는 세례를 받음으로써, 그분과 함께 묻혔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아버지의 영광으로 살리심을 받은 것과 같이, 우리도 새로운 생명 가운데서 살아가게 하려는 것입니다.”(롬 6:4)
1) 하나님과의 회복(restoration)
생명의 새로움은 우리가 다시 태어난 후 하나님의 영 안에서 사는 새로운 삶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생명의 새로움으로 다시 일어나신 것과 같이, 우리도 또한 이전의 삶의 죄악된 것들을 매장시켜 버리고 생명의 새로움 안에서 걸어야 한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이것을 말한다.
“예수는 우리의 범죄 때문에 죽임을 당하시고, 또한 우리를 의롭게 하시려고 살아나셨습니다..”(롬 4:25)
아버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로부터 일으켜 세우셨을 때, 그분은 사망을 극복하셨다. 그분이 우리를 위하여 사망을 극복하셨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비록 우리가 육체적으로는 죽지만, 영적으로는 영원히 살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모두를 영원한 지옥으로 보내는 영적 죽음을 극복하셨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아버지께 찬양을 드립시다. 하나님께서는 그 크신 자비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사람 가운데서 다시 살리심으로써, 우리에게 산 1)소망을 안겨 주셨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을 위하여 썩지 않고, 더러워 지지 않고, 낡아 없어지지 않는 유산을 받게 하셨습니다. 이 유산은 여러분의 몫으로 하늘에 간직되어 있습니다.”(벧전 1:3~4)
2) 새로운 삶의 새출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셔서, 다시는 죽지 않으시며, 다시는 죽음이 그를 지배하지 못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것은, 죄에 대하여 단 한 번만 죽으신 것이요, 그가 지금 살아 계시는 것은, 하나님께 대하여 사시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도, 여러분 스스로가 죄에 대하여는 죽은 사람이요, 하나님께 대하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살아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롬 6:9~11)
우리가 온전케 된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행하신 바로 말미암은 것이니, 우리를 위한 자신의 희생물, 곧 그분 자신을 드림으로 죄와 사망이 더 이상 우리를 다스리거나 지배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대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게 되었느니라.”(롬 3:24)
· 칭의 = 죄가 없다고 선언하는 것
· 값없이 = 보상이나 필요하여 버는 것이 아닌 것
· 은혜 = 받을 자격이 없는 호의(undeserved favor)
· 대속 = 죄로부터의 구원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 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 것이 되었습니다.”(고후 5:17)
새로 남(중생:regeneration)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존재함으로, 곧 믿음으로 그분을 모셔들임으로 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더할 것이나 뺄 것이 없다.
1 장 – 결 론
밥티스마는 다음을 보여준다(묘사한다).
1.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
2. 예수 그리스도의 장사됨
3.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밥티스마는
– 내적 회개의 외적인 표현 (우리가 구원받은 것을 보여주는 것)
– 옛 생명에 대해 내가 죽고, 내 과거를 매장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생명으로 살아나는 것
2 장 : 밥티스마의 종류 [top]
1. 잠김(Immersion)
무엇이 우리를 구원하였는가(죽음, 장사됨, 부활)를 정확히 묘사하기 위하여, 밥티스마는 반드시 죽음과 장사됨과 부활을 정확하게 묘사하는 방법으로 실행되어야 한다. 에베소서 4:5 이”한 주, 한 믿음, 한 밥티스마”를 말하는 것을 다시 기억하자.
“예수께서 세례(밥티스마, 침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셨다. 그 때에 그에게 하늘이 열렸다. 그는 하나님의 영이 비둘기 같이 내려와 자기 위에 오시는 것을 보셨다. 그리고 하늘로부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그를 좋아한다” 하시는 소리가 들려왔다..”(마 3:16~17)
1) 밥티스마의 정의
성경에서 ‘밥티스마를 주다’로 언급된 그리스어 단어는 “밥티죠(baptizo)”이다. 이 단어의 의미는 “담그다(immerse, dig), 물에 잠그다(submerge, plunge), 매몰하다(overwhelm)” 등이다.
2) 밥티스마의 관찰
밥티스마를 언급하는 성경 구절들을 간단히 살펴보면, 밥티스마를 주기 위해서는 충분한 물이 있어야 함을 누구든지 쉽게 알 수 있다.
“살렘 근처에 있는 애논에는 물이 많아서, 요한도 거기에서 세례를 주었다. 사람들이 나와서, 세례를 받았다..”(요 3:23)
성경은 명확하게 밥티스마의 방법이 잠김(IMMERSION) 이라고 가르친다. 몇 가지 성경 기록을 살펴 봄으로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바 성경이 당신에게 권위가 되게 하라.
” 빌립은 마차를 세우게 하고, 내시와 함께 물로 내려가서, 그에게 세례를 주었다. 그들이 물에서 올라오니, 주의 영이 빌립을 데리고 갔다. 그래서 내시는 그를 더 이상 볼 수 없었지만, 기쁨에 차서 가던 길을 갔다..”(행 8:38~39)
자, 이 내시가 밥티스마를 물뿌리는 것(sprinkling)으로 받았다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더우기 물뿌리는 것은 약 700년 후까지는 시작되지 않았다. 밥티스마를 베풀 때 물을 뿌리는 많은 사역자와 사제들이 있는데, 이는 물을 뿌리는 실행이 밥티스마의 원래 방법이 아니었다는 사실에 동의하는 것이다.
“그래서 온 유대 지방 사람들과 온 예루살렘 주민들이 그에게로 나아가서, 자기들의 죄를 자백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았다.”(막 1:5)
2. 왜곡(Perversion)
1) 왜곡의 기원
밥티스마에서 “붓는(pouring)” 실행은 AD 745년에 교황 스테판 2세의 포고(declaration)로 시작되었다. 이 실행은 밥티스마 받기를 원하는 병든자에게만 유효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분명히 그 동기(MOTIVE)는 원래 의도된 것이 아니였다. 이때까지 밥티스마가 구원을 얻는 길이라는 거짓말이 빠르게 퍼지고 있었다. 이 거짓말은 다음에 다루어질 것이다. “뿌리는(sprinkling)” 방법은 A.D. 1311 년 라베나 로마캐톨릭 공회에서 처음으로 공식 인가를 받았다. 당신은 하나님께서 밥티스마를 붓는 것이나 뿌리는 것으로 실행하기를 원하셨다면, 성경에 제시된 실예(實例)들의 방법으로 행해지도록 두셨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어떻게 붓는 것과 뿌리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장사됨을 보여주거나 묘사할 수 있는가? 이마에 뿌림으로 사람을 묻을 수 없다. 그렇지 않는가? 그것은 장사됨이 의도하는 목적을 만족시키지 못할 것이다. 밥티스마는 죽은 것을 매몰시키는 것이다.
어떤 것이 죽었을 때, 부패한다는 것을 유의하라(그것은 악취를 풍긴다). 밥티스마는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묘사한다. 붓는 것이나 뿌리는 것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보이거나 묘사한다는 것인가?
당신이 이같이 배웠다면 자신에게 물어 보라. “이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것인가 아니면 사람들이 가르치는 것인가”
2) 왜곡의 내포된 의미
우리는 밥티스마가 우리를 구원한 것, 곧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장사됨과 부활을 보여주거나 묘사하는 것임을 입증하였다. 붓는 것이나 뿌리는 것이 보여주는 것이 무엇인가? 우리를 구원한 어떤 것임을 보여주고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 장사됨, 부활이 구원에 중요한 것이 아니다’라고 애써 말하고 있는 것인가?
옛사람에 속한 것들을 묻어버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옛사람에 속한 것들을 묻어버리는 것, 곧 죄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씻어 버리는 것은 구원의 요건이다. 단순히 그분을 향하여 돌아서서(그리고 당신의 죄로부터 돌아서서) 그분을 개인적인 구주로 모셔들이면 당신은 구원을 받을 것이요, 하나님의 자녀로서 다시 태어날 것이다.
더 나아가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되시고, 우리를 위하여 사망을 이기기 위하여 다시 일어나실 필요가 없었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친구여, 히브리서 9:22에서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바를 말하고자 한다.
“그리고 피를 흘림이 없이는, 죄를 사함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들을 씻어버리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깨끗하고, 죄없는 피를 적용해야 한다고 요구하신다. 그들은 우리의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것인가? 성경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는 우리 죄를 그의 몸에 몸소 지시고, 나무에 달리셨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죄에는 죽고, 의에는 살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가 매를 맞아 상함으로, 여러분이 나음을 얻었습니다,”(벧전 2:24)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자 가운데서 일어나지 않으셨다고 말하는 신성모독의 한계에까지 가고 있는 것인가? 정말 그러는가? 그들의 행위는 그들의 말보다 더 요란하다. 그들이 “자신들의 밥티스마”가 의미하는 바나 행하는 바에 대해 무엇을 말하든, 그들의 행위는 다른 이야기를 말하고, 성경이 말하는 복음과 다른 복음을 묘사한다.
” 여러분을 그리스도의 은혜 안으로 불러 주신 그분에게서, 여러분이 그렇게도 빨리 떠나 다른 복음으로 넘어가는 데는,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실제로 다른 복음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몇몇 사람이 여러분을 교란시켜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왜곡시키려고 하는 것뿐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이나, 또는 하늘에서 온 천사일지라도, 우리가 여러분에게 전한 것과 다른 복음을 여러분에게 전한다면, 마땅히 저주를 받아야 합니다.”(갈 1:6~8)
무엇이 참 복음인가? 성경은 말한다.
“형제자매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전한 복음을 여러분에게 일깨워 드립니다. 여러분은 이 복음을 전해 받았으며, 또한 그 안에 서 있습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전해드린 말대로, 여러분이 복음을 굳게 잡고 있으면, 또 여러분이 헛되이 믿지 않았으면, 그 복음으로 여러분도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내가 전해 받은 중요한 것을, 여러분에게 전해 드렸습니다. 그것은 곧, 그리스도께서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것과, 무덤에 묻히셨다는 것과, 성경대로 사흘째 되는 날에 살아나셨다는 것과,,”(고전 15:1~4)
복음은
1.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들을 위하여 죽으셨다.
2. 그리스도께서 장사되셨다.
3. 그리스도께서 다시 일어나셨다.
뿌리는 것이나 붓는 것이 복음을 묘사한다고 결정하는가? 그것이 대부분의 세상이 말하는 바 당신을 하늘에 도달하게 하는 것인가? 하늘에 도달하는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당신의 구주로 받아들이고, 그가 당신의 죄를 위하여 죽으셨고, 장사되셨고, 그 죄들을 무덤으로 가져가셨고, 모든 믿는 이들을 위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으셨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하여 다시 일어나셨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비록 우리가 육체적으로는 죽지만 영원히 살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3 장 : 밥티스마의 자격 [top]
1. 유아 신자
오늘날에는 ‘누가 밥티스마를 받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어떻게 밥티스마를 받아야하는가’라는 질문만큼이나 논쟁이 된다. 밥티스마의 방법에 대하여 성경이 말하는 바를 소개하겠다. 물론’누가 밥티스마를 받을 수 있는가’를 성경을 가지고 증명하기는 매우 쉽다. 모든 선입감을 던져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라.
” “이 사람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성령을 받았으니, 그들에게 물로 세례를 주는 일을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행 10:47)
이 구절은 의심할 여지없이 밥티스마를 받기 전에 성령을 받은 것을 보여준다. 이들 성령을 받은 사람들은 구원받았고 다시 태어났다. 그들은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그들의 구주로 모셔들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이 여러분 안에 살아 계시면, 여러분은 육신 안에 있지 않고, 성령 안에 있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닙니다. 또한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살아 계시면, 여러분의 몸은 죄 때문에 죽은 것이지만, 영은 의 때문에 생명을 얻습니다.”(롬 8:9~10)
하나님의 영(성령)은 당신이 그분을 안으로 초대하지 않는 한 당신의 마음 속으로 들어 올 수도 없고 들어 오려고 하시지도 않는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모셔들이는 순간 성령님을 영접한다. 사도행전 8:36~38의 빌립과 내시에 관한 구절을 보라.
“그들이 길을 가다가, 물이 있는 곳에 이르니, 내시가 “보십시오, 여기에 물이 있습니다. 내가 세례를 받는 데에 무슨 거리낌이 되는 것이라도 있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37절 없음) 빌립은 마차를 세우게 하고, 내시와 함께 물로 내려가서, 그에게 세례를 주었다. “(행 8:36~38)
빌립은 만약 그가 “마음을 다하여 믿으면” 이라고 말했다. 이는 그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100% 믿는다면, 밥티스마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이 마음을 다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는다면, 또한 그분을 그의 구주로 영접할 것이다. 누구든지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마음으로 믿는 사람은 결코 그리스도를 배척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당신이 이것을 믿으면 당신은 자연스럽게 그 믿음에 작용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구원하시기를 요청할 것이다.
빌립은”만일 그대가 믿는다면 받을 수 있으리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것은 믿음이 단지 사실에 대한 ‘지적 동의’나 ‘지적 인정’일 뿐 마음에 기초를 둔 믿음이 아니라는 것을 가리킨다.
성경은 말씀하기를 “마귀도 또한 믿고 떠니라”고 한다. 믿음은 단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것을 아는 것 이상이다. 당신은 그분께서 당신의 마음 안으로 오셔서 죄들을 씻어 주기를 요구해야만 한다. 당신이 카운터에 가지고 있는 비누 한 덩어리를 가지고 때를 닦지 않는다면 당신의 손을 깨끗케 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당신의 죄들을 씻어 버리기 위하여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당신의 죄에 적용되어야 한다.
“…만일 그대가 마음을 다하여 믿는다면…”
“회당장인 그리스보는 그의 온 집안 식구와 함께 주님을 믿는 신자가 되었다. 그리고 고린도 사람 가운데서도 많은 사람이 바울의 말을 듣고서,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았다..”(행 18:8)
이들 고린도인들은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들었고,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밥티스마를 받았다.
하나님의 은혜에 의하여, 당신이 밥티스마를 받고자 하는 자는 밥티스마를 받기 전에 구원을 받은 자라는 사실을 알기 바란다. 만약 당신이 구원받지 못했다면 밥티스마는 단지 당신의 온 몸을 물로 적시게 할 뿐이다! 아직도 당신이 사실들을 확신하지 못한다면, 계속하여 읽고, 하나님께서 당신의 눈을 열어 주시고 진리를 보게 하시도록 기도하라.
2. 유아 사기꾼(The Infant Deceiver)
1) 유아 밥티스마의 시초
기독교의 영역에서 사탄이 그의 속이는 권능으로 만지지 않은 곳이 없다. 사탄은 계속하여 사람들을 하늘로 가지 못하게 막기 위하여 무엇이든지 할 것이다. 사탄은 사람들이 여전히 아기로 있는 동안 그들을 속이기 위하여 낮게 웅크리기까지 한다. 다음의 두 가지 사실을 생각하라.
A.D. 370년 전에는 유아 밥티스마에 관한 어떠한 기록도 없다. A.D. 370년에 로마 황제 발렌이 그의 죽어 가는 아들을 밥티스마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A.D. 416년, 멜타(Melta) 캐톨릭 공회에 의해 유아 밥티스마가 입법화되었다.
단지 이 두 가지 사실 뿐만이 아니라, 밥티스마의 자격은 반드시 먼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어야 한다고 성경이 명확하게 가르치기 때문에, 유아 밥티스마에 관한 어떠한 주장도 믿는 것이 불가능하다. 유아는 그의 마음으로 뿐만이 아니라, 지적으로도 믿지 못한다. 유아 밥티스마라는 개념은 터무니없는 것이다!
2) 유아 밥티스마의 위험
유아 밥티스마의 의미는 유아에게 매우, 매우 위험하다. 밥티스마를 받는 때가 아니라 그 이후의 삶에서이다. 다음은 “모든 가 밥티스마 성례에 관하여 알아야 할 것”이라는 제목의 팜플렛에서 인용한 것이다. 나는 어떠한 불편한 감정도 피하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교회의 이름을 비웠다. 다음은 그들의 주장이다.
“유아와 자녀들은 하나님의 은혜의 복(benefit), 죄로부터의 자유, 성령님의 인도를 받기 위하여 밥티스마를 받아야 한다.”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첫째, 하나님의 은혜는 일하지 않고 얻는 것, 공로(功勞)없이 얻는 호의로 정의될 수 있다. 이 은혜를 가져오기 위하여 당신이 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만약 행한다면, 당신은 은혜를 수고하여 얻는 것이다. 밥티스마는 당신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가져다 주지 못한다. 둘째로, 죄로부터의 자유는 단지 예수 그리스도를 당신의 구주로 모셔 드림으로 온다. 밥티스마가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 장사됨, 부활을 묘사하는지를 기억하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므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을 힘입어서,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게 하여 주심을 받습니다..”(롬 3:23~24)
· 칭의 = 죄가 없다고 선언하는 것
· 값없이 = 버는 것이 아닌 것
· 은혜 = 일하지 않고 얻는 호의, 공로(功勞)없이 얻는 호의
· 대속 = 죄로부터의 구원
· 예수 그리스도 안 = 밥티스마가 아닌 그분 안
마지막으로, 성령은 사람이 구원받기 전에는 받을 수 없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나는 내가 아기였을 때 밥티스마를 받았기 때문에 하늘로 갈 것이라는 것을 안다”라고 말한다. 맙소사! 사탄은 사람들은 자기가 받은 밥티스마로 구원받았다고 믿게 함으로 속이는데 성공했다. 유아 밥티스마는 그 밥티스마로 쉬지 않고 수백만의 사람들을 지옥으로 보냈다. 성경 안에 그 누구도 밥티스마를 받았기 때문에 하늘로 갔다고 주장한 한사람은 단 한번도 없다. 그들은 말하기를 항상 하늘로 가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것이라고 했다. 왜냐하면 구원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것이며, 아무 것도 더한 것도 덜한 것도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동일한 왜곡된 팜플렛의 그 왜곡된 페이지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져 있다.
“밥티스마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다. 그러므로 유아들이 하나님을 받아 드린다고 말할 수 없을지라도 밥티스마를 받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아이들과 유아들을 포함하여 성례를 받아들이는 모두에게 사랑의 선물을 주신다.”
무엇이라고! 첫째, 그들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은사가 밥티스마라고 말한다. 성경은 말씀하기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그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을 것이다.” (요 3:16)
“죄의 삯은 죽음이요, 하나님의 선물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영원한 생명입니다..”(롬 6:23)
“그 증언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다는 것과, 그 생명이 그 아들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요일 5:11)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은사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이들 구절 가운데서 밥티스마가 언급되는 구절을 보았는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영원한 생명은 밥티스마 안에 있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
둘째, 그들은 유아들이 하나님을 받아들이는 것을 말할 수 없다고 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성례를 받아들이는 모든 자에게 선물을 주셨다고 말한다. 나는 이 땅 위에서 가장 영리한 자가 아닐지 모르나, 당신이 구원을 받기 위하여 반드시 당신의 죄악된 상태를 고백하고 당신의 죄악된 상태에서 돌아서서 주님을 불러야 한다고 성경이 말하기 때문에 유아가 하나님을 영접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실히 안다. 당신은 유아가 그와 같이 한 것을 본 적이 있는가?
마지막으로, 유아 밥티스마는 사람에 의해 고안된 것이다. 그것은 단지 아이들을 속이는 것에 불과하다. 만약 밥티스마가 구원에 그렇게 중요하다면, 만약 밥티스마가 어떤 이가 지옥으로 가는 것을 막는데 그렇게 중요하다면, 바울이 다음과 같이 말했겠는가?
“그리스도께서는 세례를 주라고 나를 보내신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라고 보내셨습니다. 복음을 전하되, 말의 지혜로 하지 않게 하셨으니, 이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게 되지 않게 하시려는 것입니다.”(고전 1:17)
왜냐하면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이 복음은 유대 사람을 비롯하여 그리스 사람에게 이르기까지, 모든 믿는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롬 1:16)
4장 : 밥티스마(침례)의 동기 [top]
1.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함
밥티스마를 받아야 하는 단 한 가지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리스도와 동일시되기 위하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에 복종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가르치되,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밥티스마(침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것은 무엇이든 다 가르쳐 준수하게 하라. 보라, 내가 세상 끝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느니라, 하시니라 아멘”(마 28:19~20)
주님은 또한 요한복음 14:15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너희가 나를 사랑한다면, 나의 명령들을 지키라.”
성경은 밥티스마가 “내적 경험의 외적 표현”임을 보여준다. 다음의 성경기록에서 보듯이 주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셨다.
“그 때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밥티스마(침례)를 받으시려고 갈릴리로부터 요르단 강으로 요한에게 오시니라. 그러나 요한이 그분을 말리며 말씀드리되, 제가 주께 밥티스마(침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주께서 저에게 오시나이까? 이에 예수님께서 대답하여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지금은 이렇게 되도록 허락하라. 그리하여 모든 의를 성취하는 것이 우리에게 합당하니라, 하시니, 이에 그가 그분을 허락하였더라. 예수님께서 밥티스마(침례)를 받으시고 곧바로 물 속에서 올라오시니, 보라, 하늘들이 그분께 열리고 하나님의 영께서 비둘기같이 내려와 그분 위에 내려앉으시는 것을 보시더니, 또한 보라, 하늘로부터 한 음성이 있어 말씀하시기를, 이는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니 내가 그를 매우 기뻐하노라, 하시니라.”(마 3:13~17)
예수님께서는 밥티스마 요한에게로 오셔서 그로부터 밥티스마를 받으셔서, 모든 의(義)를 성취한 것과, 그분께서 하고자 원하셨던 바를 보여주셨다. 예수님의 밥티스마는 우리를 구원하는 것을 묘사한다. 예수님의 밥티스마는 예수님의 옛사람(죄의 성품)을 묻는 것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원래 죄가 없으신 분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밥티스마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우리의 죄가 그분에게 옮겨진 것과 우리의 구원을 위한 그분의 죽음과 장사됨과 부활을 묘사한다. 그것은 모든 의를 성취한다.
예수님의 밥티스마는 그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사망을 이기신 것을 묘사하며, 비록 우리가 육체적으로는 죽지만, 영원히 살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 준다.
2. 하나님의 교회의 일원이 됨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로 우리를 그리스도인, 곧 다시 태어난 믿는이가 되게 한다. 밥티스마는 하나님께 복종함으로 우리를 교회의 일원(一員)이 되게 한다.
“그 때에 그의 말을 반갑게 받아들인 사람들은 밥티스마(침례)를 받으니, 그날에 제자들에게 삼천 혼 가량이 더하여지더라.”(행 2:41)
그분의 말씀을 받아들인 사람들을 구원을 받았다! 그들은 밥티스마를 받았다. 그들은 자신들이 구원받은 것을 보여주었다! 그들은 믿는 이들의 지역 몸(local body)에 더해졌다. 그들은 교회의 일원이 되었다.
고린도전서 12:13을 보라.
“우리가 유다인이나 이방인이나, 매인 자나 자유한 자나, 다 한 성령으로 밥티스마(침례)를 받아 한 몸 안에 들어왔고, 다 한 성령으로 마시게 되어 한 성령 안에 들어왔느니라.”
우리는 밥티스마에 의해 교회, 곧, 주님의 일을 수행하기 위하여 모인 밥티스마를 받은 믿는이들의 몸 안으로 더해졌다. 구원받음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으로 태어나서 그분의 자녀가 되었다. 밥티스마를 받음으로 우리는 믿는이들의 모임(assembly)의 일원이 되었다.
성경의 다른 한 구 절을 더 보자.
“이와 동일하게 이제는 밥티스마(침례)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아 또한 우리를 구원하는 모형이니(육체의 더러움을 제거함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응답하는 것이라.)”(벧전 3:21)
·모형 = 상징, 그림
·응답 = 반응
이 구절은 “육체의 더러움을 제거함이 아니요”라고 말한다. 육체의 정욕에 친구가 되는 것은 죄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그 죄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수 있다. 밥티스마는 구원으로 인하여 예수님께서 우리의 삶을 변화시킨 것에 대한 반응이다. 밥티스마는 이미 발생한 변화의 모형이오, 상징이다.
5 장 : 밥티스마에 관한 허위(untruth) [top]
1. 밥티스마는 새로운 출생이다.
새로운 출생은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밥티스마는 새로운 출생이 아니다.
“그러나 그를 맞아들인 사람들, 곧 그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다. 그들은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욕망으로 나지 않고, 하나님께로부터 났다..”(요 1:12~13)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 하나님의 가족의 일원이 되는 것,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그분을 모셔들이는 자마다”이지 “밥티스마를 받은 자마다”가 아니다.
·혈통 = 인간의 계보
·육신의 뜻 = 행위로 말미암음
·사람의 뜻 = 목양자, 교황, 또는 사제를 통하여
우리의 가족이 누구인지, 왕족이던 또는 성직자이던,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것은 혈통에 의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어떤 이가 행하는 행위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목양자, 교황 또는 사제들의 행위나 포고(布告)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다. 그들은 당신을 다시 태어난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거나 선언할 수 없다.
성경이 말하는 “오직 하나님에게서 태어난 자들이니라”는 반드시 하나님의 법칙을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새로운 출생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은 간단하다. 예수 그리스도를 당신의 구주로 모셔들임으로 다시 태어나라.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용어를 두셨다. 당신이 거기에 앉아서 하나님이 존재하심을 부인할 수 있으나, 실제는 여전히 적용된다. 당신이 죽고 영원 안으로 들어가자 마자, 하나님께서 선포하신 용어가 당신께 적용되는 것을 알 것이다
그것이 하늘에서 있게 될 것인지 아니면 지옥에서 있게 될 것인지는 당신에게 달려 있다.
2. 밥티스마는 범한 죄를 씻어 버린다.
성경은 결코 밥티스마가 어떤 것을 씻어 버린다고 말하지 않는다. 밥티스마는 단지 그림이며, 모형이다. 성경은 말하기를
“또 신실한 증인이시요 죽은 사람의 첫 열매이시요 땅 위의 왕들의 지배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려 주시는 은혜와 평화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빕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며, 자기의 피로 우리의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여 주셨고,”(계 1:5)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범한 죄들의 형벌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우리를 씻어 주셨으나, 우리는 계속하여 죄를 범할 것이다. 그분께서 우리의 죄들을 위하여 죽으셨을 때, 그분은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들을 위하여 죽으셨다. 밥티스마의 물로 씻어졌는가? 아니다! 그렇다면 밥티스마 안에서인가? 아니다! 그분 자신의 피안에서이다! 성경은 말씀하기를,
“여러분 가운데 이런 사람이 더러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으로 씻어 주심을 받고, 거룩하게 하여 주심을 받고, 의롭게 하여 주심을 받았습니다..”(고전 6:11)
성경은 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피로 사신” – (행 20:28)
…”그분의 피로 의롭게 되었은즉” – (롬 5:9)
…”그분의 피로 말미암아 대속” – (엡 1:7)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 (엡 2:13)
3. 밥티스마는 우리를 사망의 권능으로부터 구원하고 영원한 생명을 약속한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망에서 구원하신다고 말씀한다. 성경은 말씀하기를,” 그 증언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다는 것과, 그 생명이 그 아들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 아들을 모신 사람은 생명을 가진 사람이고, 하나님의 아들을 모시지 않은 사람은 생명을 가지지 못한 사람입니다.”(요일 5:11~12)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다. 그 생명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 그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하여 당신은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를 당신의 구주로 영접해야 한다. 영원한 생명은 밥티스마 안에 있지 않다.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믿는 사람에게는 영생이 있다.,”(요 6:47)
우리 주님께서 “믿고 밥티스마를 받은 자는…”이라고 말씀하셨는가? 아니다! 주님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았다!
주님께서는 마음의 품은 바를 말씀하시며, 말씀하시는 바를 의도하신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또한 말씀하시기를,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올 사람이 없다..”(요 14:6)
4. 죄의 사면을 위하여 반드시 밥티스마를 받아야 한다.
먼저 이 개념의 “증거 본문”으로 자주 사용되는 구절을 성경에서 보기로 하자.
” 베드로가 대답하였다.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은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10)세례를 받고, 죄의 용서함(for the remission of sins)을 받으십시오. 그러면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입니다.”(행 2:38)
첫째, ‘for’는 “…때문에(because of)”를 의미할 수 있다. 둘째, ‘for’는 “…하기 위하여(in order to)”를 의미할 수 있다.
우리는 이 두 가지 가 한 구절에서 증명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예수님께서 나병이 가득 번진 사람을 치료하시는 구절을 보자.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서, 그에게 대시고 “그렇게 해주마. 깨끗하게 되어라” 하고 말씀하시니, 곧 나병이 그에게서 떠나갔다. 예수께서 그 사람에게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명하시고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네가 깨끗하게 된 것에 관하여(for thy cleansing) 모세가 명령한 대로 예물을 드려서, 사람들에게 증거로 삼도록(for a testimony), 하여라” 하고 말씀하셨다.”(눅 5:13~14)
이 구절은, 성경과 성경을 비교하면서, 오늘날 이들 단어들이 주는 의미가 아닌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단어의 의미에 마음을 집중하면서 어떻게 참되게 성경을 공부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14절에서 처음 사용된 ‘for’의 의미는 “…때문에”이다. 주님께서는 그 사람에게 제사장에게 가서 깨끗하게 되었기 때문에 자신을 보이라고 말씀하셨다. 13절에서 “나병이 그에게서 떠나니라”라고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곳에서 주님께서 깨끗하게 하셨기 때문에 그에게 자신을 보이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사람은 그가 이미 깨끗하게 되었기 때문에 깨끗하게 하기 위하여 자신을 보일 필요가 없었다. 또한 이 구절에서 예수님께서 그 사람을 제사장들에게 보내신 것을 주지하는 것이 유익하다. 왜냐하면, 율법에 따르면, 오직 제사장만이 사람이 깨끗한가 또는 더러운가를 선언할 수 있기 때문이다.
14절에서, 두 번째로 사용된 ‘for’는 “…하기 위하여”의 의미로 쓰였다. 주님께서는 “제사장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기 위하여” 그들에게 자신을 보이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이곳에서 사용된 ‘for’는 “…하기 위하여”를 의미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증거를 보이기 위하여 제사장들에게 자신을 보이라고 말씀하신다.
증거로 번역된 그리스어는 “증거가 되는, 또는 증서(evidence)”로 정의된다.
이것은 오늘날 언어 가운데 있는 친숙한 용어로 좀 더 설명될 수 있다.
어떤 사람이 살인으로(for murder) 투옥되었다고 말할 때, 그것은 “살인을 위하여(in order to murder)”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살인 때문에(because of murder)”를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도행전 2:38절에서 “죄들의 사면”은 “죄들의 사면 때문에”를 의미한다고 결론 내릴 수 있다. 만약 우리가 “죄들의 사면을 위하여”라는 의미로 사용한다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만이 죄들을 사면한다고 말씀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부인하는 것이다.
6 장. 결 론 [top]
밥티스마는 우리를 구원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 장사됨과 부활에 대한 단순한 모형이다. 구원은 당신이 무엇을 행함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구원은 받아들임으로 얻는 것이다. 행해야 할 부분은 약 2000 년 전에 갈보리의 십자가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이루어졌다.
“여러분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구원이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님은, 아무도 그것을 자랑할 수 없게 하려고 하시는 것입니다..”(엡 2:8,9)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지, 밥트스마에 있지 않다. 우리의 구주는 예수 그리스도이다. 우리의 구주는 밥티스마가 아니다.
사랑하는 친구여, 하나님께서 이미 이루신 것에 더하려고 애쓰지 말라. 그것에 더하려고 애쓴다면 그것은 당신 자신에게서 온 것이 된다. 당신 자신에게서 온 어떠한 것도 당신을 구원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구원을 위한 모든 것을 혼자서 하신다. 만약 하나님께서 하실 수 없다면 그분은 대단하신 하나님이 아니지 않는가?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에 아무 것도 더하거나 빼지 않는 것이다. 구원에 무엇인가를 더하면, 당신은 구원을 얻지 못한다. 구원에서 무엇인가를 제거한다면, 당신은 구원을 얻지 못한다.
준비되지 않은 채 영원 안으로 발을 들여놓지 말라; 일단 당신이 죽으면 그때는 너무 늦었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다른 날을 주실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그분의 불멸의 긍휼을 청하라. 당신을 구원해 주시기를 구하라. 그분은 당신을 완전히 온전하게 만드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이루셨으며, 지금 당신이 자신에게로 나오기를 기다리고 계신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너희가 발견할 것이요,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마 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