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신인가 믿음인가?
전에 이사할 일이 있어 이삿짐센터에 견적을 의뢰했다. 한 아주머니가 오셔서 집을 훑어보고 견적을 내 주었다. 그리고 이사 날짜를 물어보면서 손 없는 날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고, 그때 이사를 하지 못하면 그 전날에라도 미리 가서 쌀을 씻어 밥을 지어 먹고 잠을 자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목사다. 그런 것은 믿지 않는다”고 했더니, 아줌마는 “나도 교회를 다니는데, 얼마 전 우리 담임목사님도 이사했는데, 목사님이 손 없는 날에 이사를 가고 싶다고 해서 그날 잡아 드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줌마는 “봐라 믿는 사람들도 다 한다. 손해 볼 것 없지 않느냐, 손 없는 날에 이사 못할 때 미리 가서 쌀을 씻는 이유는, 쌀이 물에 불어나듯이 재물이 불어나라는 의미가 있다”고 설명해 주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믿는 사람이 그리고 그분의 담임목사라는 사람이 어떻게 그런 미신 따위를 믿는가?’라는 한심한 생각을 했다. 손 없는 날이 무엇인가? 많은 사람이 우리 민속 신앙으로 알고 있다. 전통을 지키는 의미에서 ‘손 없는 날’은 지켜야 한다는 이도 많다. 하지만 민속학 전문가가 말한 바로는 ‘손 없는 날’은 처음엔 인도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불교의 한 종파인 인도의 밀교에서 천문학을 다뤘는데, 그 영향으로 동서남북 네 방향에 대한 악귀 설이 나왔고, 이 믿음이 임진왜란 당시 불안한 사회 분위기를 틈타 널리 퍼진 것이라고 한다. 불안한 상황에 뭔가를 믿고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나도 믿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그런 미신적인 것들을 버리지 못했던 때가 있었다. 베개를 세워 놓으면 귀신이 따라온다, 도둑이 든다, 빨리 죽는다. 문지방을 밟고 넘으면 복이 나간다. 어렸을 때부터 그런 말 많이 들었기 때문에, 그걸 믿었다. 우리는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미신을 들으면 살아왔는가? 같은 성을 가진 사람끼리 결혼하면 해롭다. 서로 상극인 띠는 결혼하지 않는다. 거꾸로 자면 나쁘다. 아이를 업고 상가에 가면 아이가 병이 난다. 어린아이는 초상집에 가지 않는다. 결혼 날짜를 잡은 후에는 다른 결혼식에 가지 않는다. 국그릇을 왼쪽에 놓고 식사하면 나쁘다. 남에게 맨발로 인사하면 나쁘다. 개를 오래 기르면 좋지 않다. 남자가 누룽지 먹으면 재수 없다. 낮에 옛날이야기를 좋아하면 가난하게 산다. 다리를 떨면 복이 나간다. 밤에 귀를 후비면 무서운 일을 당한다. 밤에 휘파람을 불면 뱀 나온다. 밤에 손톱을 깎으면 귀신 나온다. 생일날 죽 쑤어 먹으면 가난해진다. 숟가락을 엎어 놓으면 가난해진다. 아이에게 귀엽다고 하면 수명이 줄어든다. 어른의 모자를 쓰면 키가 자라지 않는다. 여자가 그릇을 잘 깨면 팔자가 세다. 여자가 남자의 신을 밟으면 재수없다. 여자가 밤에 머리를 풀면 집안이 망한다. 여자가 음성이 크면 과부가 된다. 여자가 고개를 쳐들고 다니면 팔자가 세다. 여자는 날이 궂은 날 머리 감지 않는다. 이를 갈면 부모가 일찍 돌아가신다. 이름을 빨간 것으로 쓰면 죽는다. 교회 다니지 않는 사람도 차에 성경책을 두고 다닌다. 빌딩에 4층을 4층이라고 하지 않고 F라고 표시하는 것. 이런 것들은 다 미신이다. 미신은 ‘신비 술이나 운 또는 독단적인 견해를 믿는 비합리적인 신앙, 행습, 혹은 의식’이다. 그리고 미신을 믿는 사람은 사실상 보이지 않는 힘이 자신의 생활을 주관하도록 허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주로 어떤 자들이 그렇게 허용하는가? 미신에 쉽게 빠지게 되는 사람들을 보면 불안해한다. 이런 현상은 교회 안에서도 볼 수 있는데, 왜 사람들은 그러한 불안은 떨쳐버리지 못하는가? 그것은 믿음이 없어서 그렇다. 믿음은 무엇인가? 하나님과의 관계다. 그 하나님과의 관계가 불안하므로 자꾸 이리저리 다른 곳을 기웃거리며 미신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삶의 불안을 떨쳐버리고 하나님과 관계를 튼튼히 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그 방법을 깨우치게 되면 우리는 어떠한 미신으로부터 유혹 받지 않고 우리 자신을 지킬 수 있다. 온전한 자기 변화를 추구하라 로마서 12장 2절에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말씀하신다. 온전한 믿음은 자기 자신이 변화하는 것이다. 옛날에 우리의 조상은 찬물 한 그릇 떠놓고 나무나 바위에 빌었다. 두 손을 비비며 비는 그 모습은 얼마나 경건해 보이는지 모른다. 밤새도록 자신의 소원을 빈다. 손금이 다 없어질 정도로. 그리고 우상에게 바치는 예물이 어느 정도인가? 한국에서 유명한 무당에게 굿을 한번 벌이려면 몇 천만 원, 몇억 원씩이나 된다고 한다. 또 용한 점쟁이에게 부적을 하나 받으려 해도 몇백, 몇천 만 원이라고 한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큰돈이 왔다 갔다 한다. 정말 우상숭배 하는 사람들이 바치는 정성, 시간, 돈은 참으로 대단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들이 대단한 믿음을 가졌다고 말할 수 없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들은 자신들이 여러 가지를 바쳐 그들이 섬기는 신의 마음을 돌리려고 한다. 자신의 소원대로 신이 해주기를 바라고 여러 가지를 바친다. 나에게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신을 어르고, 얼러서 두려운 일을 피해 보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이 바치는 것은 모두 뇌물이 되는 셈이다. 뇌물을 써서 신을 변화시키려 하고, 자신은 변하려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지 않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자신이 변하는 것입니다. 참믿음은 하나님을 변하게 하는 것이 아니고, 나 자신이 변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변하는 믿음이 올바른 믿음이고, 변하지 않았다면 올바른 믿음이 아니다. 자신이 변화하는 것을 거부하고, 하나님을 변화시키려고 노력하며 살아왔다면 그것은 미신이다. 사도바울은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예수님 믿는 사람들을 잡고, 심지어 죽이는데 앞장을 섰던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이 가장 하나님을 올바르게, 확실하고, 열심히 믿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그런데 그가 예수님을 믿고 나서는 180도로 바뀌었습니다. 예수님을 전하는 일만 했다. 그는 죽기까지 복음을 전했다. 이것이 진정한 변화이며 참믿음이다. 예수님을 믿는 참믿음을 가진 사람은 누구든지 변한다. 그러므로 참믿음을 가졌는가는 얼마나 변화했는가로 평가되어야 한다. 자기를 부인하고 헌신하라 누가복음 9장 23절에 이렇게 말씀하신다.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예수님을 따르는 삶,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은 자신을 부인하는 것이다. 자기를 부인한다는 뜻이 무엇인가? 바울은 바리새인이었다. 베냐민 지파였으며 가말리엘 문하생이고 로마 시민권자였다. 모든 조건이 세상 사람들에게 자랑할 만했다. 그러나 그는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다. 자랑거리가 없는 것이 아니라, 자랑거리를 다 버린 것이다. 자신의 생각, 자신의 고집, 자신의 영광, 자신의 뜻, 자신의 유익을 버리는 것이다. 그것이 자기부인이다. 결코 내가 가진 것을 그대로 지니고는 예수님을 따라갈 수 없다. 십자가도 질 수 없다. 그렇듯 자기부인이 없는 신앙은 미신이다.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에게는 자기부인이 없다. 자신이 죄인이라는 생각도 없고, 자신의 죄에 대한 처절한 애통도 없다. 그들은 운명 탓한다. 자신의 잘못은 하나도 없다고 한다. 그래서 뇌물을 써서라도 자신의 운명을 바꾸려고 한다. 굿도 하고, 부적도 가지고 다니고, 정성을 바치는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해결책은 내 자신을 부인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아무리 환경 탓을 하고, 환경을 고치려고 해도 헛일이다. 내 자신이 변하면 모든 일이 해결된다. 내 자신을 부인하면 된다. 또, 로마서 12장 1절은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라고 말씀한다. 예배는 자신의 몸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우상숭배 하는 사람은 많은 것을 바친다. 시간과 정성을 바친다. 그러나 결코 자신을 바치지 않는다. 누구도 자신이 섬기는 신에게 자신을 바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좋은 일을 위해 신이 바쳐지기를 원한다. 그래서 그들의 신앙은 미신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참믿음은 자신을 드리는 것이다. -추하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