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SITORS:

  • 119

    TODAY

  • 164

    YESTERDAY

  • 2,679

    MAX

  • 329,967

    TOTAL

Support: 0507-1337-3927

aidchoo@daum.net

0507-1337-3927

aidchoo@daum.net

자유게시판

666은 무엇, 누구인가?

  • 2018-04-03
  • incharity
  • 5,974
  • 0

어느 분이 내게 책 한권을 읽어 보라고 주었다. 그 내용인즉 종말의 신호로 나타나는 것은 666표이며 이는 생체칩이라는 것이다. 이 칩은 마이크로 칩으로 생체에 넣는 ID이며 이것이 있어야 물건을 사고 팔 수 있게 된다는 주장이다. 과연 이런 주장은 옳은 것인가를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자세히 점검해보아야 할 것이다.

잘못된 해석이 난무하는 세상, <성경을 어떻게 해석하는가>가 가장 중요하다. 믿는 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경을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하는가이다. 바르지 못한 해석은 사람들을 이단(끝이 다름)으로 이끌어 결국 멸망의 길을 걷게 한다. 성경을 보면 지금은 종말이 아주 가까운 때이다.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단12:4)”

위 말씀과 같이 인간의 지식이 최근 얼마나 많이 더해져 갔는가? 인터넷을 통해서 세계의 모든 상황을 보고 들을 수 있게 되었고 인간들의 지적 수준이 엄청나게 더하여 졌다. 또 교통수단의 발달로 사람들의 왕래가 아주 빨라졌다. 2천년 전에 예수께서는 여행하셨던 곳이 바로 두로와 시돈 지경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은 온 세계가 하룻길 밖에 되지 않게 되었다. 우리는 다니엘 때에 인봉하여 간수한 말씀들이 떼어지는 시기(계6:1)에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말세에 신앙인들은 더욱 분명한 분별력(롬12:2)을 가져야 한다. 성경은 사실을 말해주는 내용이 있기도 하며 또한 상징이나 예화로 말해주는 곳도 있다. 사실을 상징으로 보거나 상징을 사실로 보는 잘못된 해석을 한다면 하나님의 뜻과는 전혀 다른 길을 가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두렵고 떨림)함으로 분별력 있는 말씀의 지혜와 지식의 사람이 돼야 한다. 특히 계시록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장차 필히 될 일들을 사도 요한을 통해 보여주고 기록하게 한 책(계1:1)이다.

계시록은 그 표현에 있어 상징을 사용하는데 어린양은 그리스도를, 촛대는 교회를, 용은 사탄, 짐승은 적그리스도, 음녀는 타락한 교회를 말해 준다. 그리고 계시록의 기록 순서들은 장차 되어질 사건들의 순서와 무관하지 않다.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시며 온전하신 분이시다. 창조 때에도 땅이 혼돈하며 공허한 상태에서 질서를 명하여 이루시고 빛과 어둠을 나누셨다. 즉 하나님의 창조역사는 그 순서와 질서대로이며 지금도 그의 계획하신 뜻대로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그의 계획을 기록한 계시록도 그 순서와 질서대로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성경은 절대 혼동되거나 복잡하지 않으며 단순(Simplicity)한 것이다. 다만 인간들이 복잡하게 만들어 가고 있다. 이러한 것들은 하나님께서 결코 원치 않으신다.

계시록 13장에 나타나는 짐승은 무엇을 말하며 666은 무엇인가?
계시록 13장에는 두 짐승이 나온다. 먼저는 바다에서 나온 짐승이며 두 번째는 땅에서 나온 짐승이다. 이 짐승을 문자 그대로 짐승으로 보면 잘못된 해석이 된다. 이 짐승은 사탄으로부터 큰 능력을 받은 사람을 의미한다. 즉 적그리스도이다. 그는 큰 이적과 기사를 행하며 사람들을 지배하는 큰 힘을 가진 자이다. 물론 그가 누구인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이 세상에 지금 자라고 있는지 아니면 아직 태어나지 않는 자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러한 능력을 가진 자가 분명히 나타나게 된다.

그 표를 어디에다 하는가?
16-17절에는 “그(짐승)가 모든 자들에게--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Mark)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그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라고 말씀해 준다. 그가 권력을 가졌기에 그 표를 받는 자들만이 매매를 할 수 있게 했다는 것이다.

그 표를 어디에다 어떻게 하는가? 물론 오른손에나 이마에다 한다. 그러면 그 표를 인간의 표피에 하는가 아니면 칩을 생체 안에다 삽입하는 것인가? 헬라어 성경에서 영어성경으로 해석한 것을 살펴보면 KJV에는 “in"을 사용하였기에 오른손이나 이마 ‘속’에라고 해석을 할 수 있다. 그러나 RSV, NIV에서는 “on"을 사용하여 ‘~에’라는 표현으로 겉 피부에 마크를 한다는 뜻으로 해석하게 된다. 그런데 생체 속에다 칩을 삽입하느냐 아니면 피부에 표를 새기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 표가 어떤 것이냐는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표가 과연 생체칩이란 말인가? No!
세상은 물물교환시대와 화폐시대를 거쳤다. 그리고 지금은 뱅크체크나 크레딧카드를 많이 사용한다. 돈은 은행에서 관리하고 자기 어카운트 번호(숫자)로 모든 것이 거래된다. 개인 ID를 지문이나 눈동자의 상을 이용해 식별하는 기술들이 개발되고 있기도 하다. 체크나 크레딧 카드는 분실과 도용의 단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개개인의 권인과 안전을 위해 생체칩 사용이 필요해진 시대이다. 물론 모든 기술은 악인들에 의해 악용될 수 있다. 하지만 더 새로운 기술과 사용을 거부하는 것은 문화와 과학의 발달을 거부하는 것이지 사탄과 적그리스도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다.

미주 동북부 필라델피아 지역에 아미쉿(Amish)들이 많이 살고 있는데 그들은 신앙을 지킨다는 뜻에서 과학 문명의 발달을 거부하며 살고 있다. 그들은 전기를 사용하지 않고, 자동차가 아닌 마차를 사용한다. 생체칩을 거부해야 참된 신앙인이라고 한다면 그들은 아미쉿들이 아니겠는가?

짐승의 표, 즉 666은 어떤 표를 말하는 것인가?
물론 물건을 사고 팔 때에 상품에 붙여지는 바-코드는 짐승의 표인 666은 절대 아니다. 왜냐면 바-코드가 사람이 아닌 상품에게 붙여졌기 때문이다. 계시록 13장 17절 하반절부터 18절까지에는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 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보라. 그 수는 사람의 수니 육백육십륙(666)이니라” 라고 기록되어 있다. 분명한 것은 그 표는 짐승(적그리스도)의 이름이며 그 이름은 히브리어나 헬라어로 표기될 것이다. 그 이름을 숫자로 환산하여 666이 되는 그 사람의 표라는 것이다. 여기서 한 사람을 한 국가로 볼 수도 있기에 그 사람의 이름이나 그 국가의 이름이 숫자로 환산하면 666이라는 것이다.

헬라어와 히브리어 알파벳과 숫자로 표시하면 아래와 같다. (참조:Number in Scripture by E.W. Bulinger)
 

pd_20110204085621_600.jpg


참고로 Jesus(예수)는 888로서 Dominical(주님), Sodom(소돔)은 999로서 Judgement(심판), The Beast(그짐승)는 666으로 man(사람), 물고기 153(요21:11)는 베니 하엘로힘(Sons of God=하나님의 아들들)을 숫자로 환산한 것이다. 로마 알파벳은 전체를 다만 6개의 알파벳만 사용하여 숫자를 표시하는데, D=500, C=100, L=50, X=10, V=5. I=1 이며, 이것들의 합산이 666이 되어진다. 그리고 6x6=36인데, 1부터 36까지 모든 숫자를 합하면 666이 되기도 한다.

짐승의 표를 받기 전에 분명히 14만4천의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인침을 받는 일이 있어야 한다.

이 짐승의 표인 666시대는 인류의 종말 즉 7년 대환란의 마지막 때에 있다. 이 적그리스도인 짐승이 모든 사람들로 이 짐승의 표를 받게 하기 전에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하더라(계7:3)”의 말씀과 같이 그리스도의 종들이 이마에 인 맞는 사건이 있어야 한다. 이들의 숫자가 14만 4천명이다. 이들은 7년 대환란의 때를 견디면서 승리하는 믿음의 용사들이다. 이들 만이 짐승의 표를 받지 않고도 그 환난을 견디며 승리하게 되는 무리들이다. 이들은 육체의 죽음을 보지 않고 부활의 주님을 영광중에 맞이하게 되는 믿음의 특수 정예 군인들이다.

종말은 속히 도래될 것, 성도는 매일 바른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결과만을 중요시한다. 그래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시작도 중요하고 결과도 중요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 과정을 중요시한다. 믿음으로 시작하였으면 참된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과정이 중요하다. 그 아름다운 결과는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셨기 때문에 우리의 염려할 바가 아니다. 그러므로 참 성도는 항상 의(Righteous)와 인(Mercy)과 신(Faithfullness)의 삶(미6:8, 마23:23)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평상시에 열심히 예습 복습하며 배움의 도를 다한 학생은 종말시험이 언제오든 두려움이 없다. 그러나 날치기 공부하는 자들은 그 결과만을 얻기 위해 준비를 하지 못하였기에 커닝하고 연필 굴리기를 하게 된다. 미련한 자기 되지 말고 지혜있는 자가 되어져야 하며,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1) 읽고, 2) 듣고, 3) 배우고, 4) 묵상하고, 5) 외우며, 또 그 말씀을 6)행하고, 7)전하는 길만이 종말을 준비하여 살아가는 자의 삶일 것이다.

성경에서 질문이 있으시거나 이 글을 읽다가 의문된 것이 있으시면 keuntaikim@gmail.com으로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