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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예수 탄생의 족보에 왜 다섯 여인이 들어 있나

  • 2018-04-03
  • inchar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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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장의 예수 탄생 족보를 보면 특이한 점이 있다. 유대인의 족보엔 우리나라 족보와 같이 여인들이 들어가지 않는 것이 통례이다. 그런데 예수 탄생 족보에 다섯 여인이 들어있으며 그 중 4명이 이방여인으로 아주 부끄러운 사연들을 가진 자들이다. 다말은 창녀 모습으로 단장하고 시아버지 유다를 꾀여 관계했던 여인이며, 라합은 여리고성의 기생으로 기생집 주인, 룻은 이방 모압 여인, 밧세바는 우리아의 아내지만 다윗왕과 간음하였던 여인이다. 이것은 선민사상을 갖는 유대인들로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다. 그럼에도 왜 마태는 그 복음서 첫 장에서 저들의 이름을 열거하면서 예수 그리스도 탄생 족보에 넣어 두었을까? 그 의도는 무엇이며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고 있는가?

첫째는 성경은 진실을 말해 줌으로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임에 확신을 준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 단점을 말하기를 꺼려하지만 장점은 말하길 좋아할 뿐 아니라 과장하여 말하기도 한다. 이것은 인간의 속성이다. 그러나 성경은 은밀한 일까지 폭로해 주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기록해 주고 있다. 그리고 결국에 하나님은 그 은밀한 일까지도 심판하시는 분이시다(전12:14). 성경은 진실한 책이며 사건들을 꾸밈없이 기록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더욱 신뢰하게 되고 하나님의 무오한 말씀에 확신을 갖게 된다.

사도바울은 스테반을 돌로 쳐 죽이는 일을 진두지휘했던 사람이었지만 변화되어 복음의 사명을 맡은 자로 충성을 다하였던 사람이다. 그럼에도 그는 “내가 부득불 자랑할 진데 나의 약한 것(약점)을 자랑하리라(고후11:30)”고 말한다. 성경은 믿음의 사람들의 약점을 기록해 주며 어떻게 변화되었고 어떤 사람이 되었는가를 가르쳐 준다. 그러므로 성경은 우리에게 연약한 모습을 보게하고 변화되어 위대한 믿음의 사람이 되게하는 믿음과 확신, 용기를 심어준다.

둘째는 그리스도만이 구원의 길이며,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얻게 됨을 증명해 준다.
네 명의 이방여인들은 사회, 도덕 윤리적 면에서 볼 때 흠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다. 그러나 저들은 메시야를 믿음으로 대망하던 자들이다. 따라서 성경은 저들을 그리스도 탄생의 역사로 기록하고 있다. 그리스도가 없는 선행은 그 자체가 아무런 의미가 없지만(잠16:25), 큰 죄를 범한 자라도 그리스도를 믿어 회개한 자들은 죄사함을 받아 의롭다 하심을 받게 되며, 이러한 자들을 하나님은 자녀 삼으시고 저들로 인하여 기뻐하시며 저들에게 복을 주시고 존귀히 여기신다.

셋째는 죄인이 그리스도로 인하여 변화되고 5단계의 신앙 성장을 가져옴을 표적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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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말의 이야기는 그리스도의 족보에 있어 빠져서는 안될 기록이다.

1. 다말: 그리스도 영접 -- 창세기 38장에 기록된 유다(시아버지)와 다말(며느리)의 정사 사건은 현대 드라마에서는 Rated "R" 혹은 “X"에 속하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럼에도 성경은 이 사건을 적나라하게 기록해 준다. 창세기 38장은 성경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만약에 이 장의 기록이 빠져 있다면, 그리스도의 탄생 족보에 연결이 끊어지기 때문이다. 창세기의 후반부 기록은 요셉의 이야기지만 그리스도는 요셉의 족보를 통해서 오시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다말은 자기 남편이 죽게 되었을 때, 다른 곳으로 시집간다 해도 아무 하자가 없었다. 그럼에도 다말은 끝까지 유다의 후손을 이어주는 자가 되길 원했다. 분명 그녀는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믿음을 가졌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언약 ”네 씨(Seed = Christ)로 말미암아 만인이 복을 받으리라(창22:38)“하신 말씀을 전해 듣고 확신을 가졌던 것이 분명하다. 그녀는 자기 남편과 남편의 동생 죽었음에도 시아버지 유다의 셋째 아들이 클 때까지 오랜 기간을 기다렸지만 그 아들을 자기에게 주지 않음을 알고 시아버지를 꾀어 통간을 하였다. 그 결과로 쌍둥이 아들을 얻어 그리스도 족보의 연결을 이루었다. 그녀는 그리스도를 대망하며 죽음을 각오하고 그 일 행했다.

이는 마치 야곱이 아버지를 속이면서도 장자의 축복을 취하였던 것과 같이 그 행위에서는 칭찬은 못하겠지만 믿음으로 행하였다는 것이다. 그러한 다말의 믿음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게 되신 것이다. 이는 마치 모든 구원 받은 자들이 신앙의 첫 단계로 그리스도(Seed)를 심령에 영접하여 그리스도인이 되는 첫 단계와 같다고 볼 수 있다.

2. 라합: 구원의 확신 -- 여호수아 2장은 여리고 성이 이스라엘의 공격에 함락되어질 때 기생 라합과 그 친족들이 다 구원을 받게 되는 사건을 기록해 준다. 라합은 죽음의 위험을 무릎서고 이스라엘 정탐꾼을 숨겨 살려주었다. 라합은 정탐꾼들에게 자기와 가족들을 선대해 달라고 요청했으며 정탐꾼은 비밀을 누설치 말 것과 라합의 집 창문에 붉은 줄을 내려 놓을 것을 지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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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라합이 그 집 창문에 붉은 줄을 내리지 않았다면 아무리 그녀가 정탐군을 살려줬다 할지라도 살아남을 수 없었다. 라합과 그 가족이 구원을 받게 된 것은 그녀가 창문에 붉은 줄을 내렸고 그 집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출애굽 사건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린양을 잡고 그 피를 문설주와 문지방에 바름으로 장자를 구할 수 있었던 것과 같다. 붉은 색은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미하며 붉은 줄을 내림은 구원의 확신을 가진 믿음의 행위인 것이다. 신앙의 두 번째 단계로 구원의 확신을 갖는 것이며, 오늘 죽는 다 해도 그리스도 보혈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됨에 확신을 갖게 되는 단계인 것이다.

3. 룻: 교회에 충성 -- 룻기는 이방 모암 여인 룻의 이야기를 기록해 준다.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게 되니 엘리멜렉은 아내 나오미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지방으로 이주했고 두 아들은 이방여인과 결혼하게 됐다. 여기서 엘리멜렉과 두 아들 죽게 되자 나오미와 두 며느리들만 남게 됐다. 이 때 나오미는 두 며느리에게 친정으로 돌아가 재혼하라고 종용했지만 룻은 끝까지 시어머니를 따라 베들레헴으로 왔다. 여기서 룻은 기업 무를 자인 보아스(기생 라합이 낳은 아들)와 결혼을 하게 됐고 아들 오벳(다윗의 친할아버지)을 낳았다.

시어머니 나오미(기쁨)가 마라(고통) 칭하여지는(룻1:20) 상황에도 룻은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며, 어머니를 죽기까지 따르겠다는 위대한 결단을 한 여인이며, 그 결단으로 실천에 옮긴 여인이다. 성경에서 과부는 참된 그리스도의 교회를 예표해 준다. 여기에 반하여 계시록에 나타난 음녀는 타락한 교회를 말해준다고 볼 수 있다. 현대 교회에 확산되어 가는 종교 다원주위를 외치는 교회들은 타락한 음녀들의 모습을 보게 된다. 룻에게서 핍박과 환난 가운데서도 믿음의 정절을 지키며 교회를 충성으로 섬기는 성도의 모습(계2:10, 충성된 서머나 교회)을 찾아보게 된다. 그러므로 참된 신앙인으로 구원의 확신을 가진 자는 참된 교회를 위해 죽도록 충성하는 3번째 신앙의 단계를 갖게 된다.

4. 밧세바: 죄씻음으로 성결 -- 우리아의 아내인 밧세바는 남편이 전쟁터에 나가 있는 동안 집 뜰에서 목욕하였으며 그 몸매가 너무 아름다워 다윗의 시선을 끌게 됐다. 결국 다윗과 간통을 하게 되었으며 그로인해 임신하게 되었다. 그 때문에 다윗은 그녀의 남편 우리아를 전쟁에서 죽게 하는 더 큰 죄를 범하게 되었다. 다윗이 밧세바를 아내로 삼고 낳은 아이는 병들어 죽게 되었으며 밧세바는 그 후에 4명의 아들을 갖게 되었다. 그 아들 중에 솔로몬을 통해 족보(마리아의 남편 요셉의 족보)가 이루어 졌으며, 다른 아들인 나단을 통해 누가복음에 기록된 예수 족보(마리아 편의 족보)가 이루어지게 됐다.

그러면 어떤 점에서 밧세바가 예수 족보에 들어가게 되었을까? 그 해답은 사무엘하 11장 4절의 말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우리말 성경에는, “다윗이 사자를 보내어 저(밧세바)를 자기에게로 데려오게 하고 저가 그 부정함을 깨끗게 하였으므로 더불어 동침하매 저가 지기 집으로 돌아가니라”라고 기록해 주고 있다. 그러나 원문 성경 기록에서는 그 순서가 다르게 기록되어 있으며, (1)더불어 동침하고, (2)부정함을 깨끗게(Purify) 했기에, (3)자기 집으로 돌아갔다는 순서이다. 대부분의 영어성경(KJV, RSV, NIV 등등)에는 원문 순서를 따라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NRSV에서는 “she was purifying herself after her period(월경기간)”이라고 표현한 번역도 있는데 이 번역은 잘못된 것이며, 우리말 성경 번역도 잘못된 번역이라고 필자는 믿는다.

밧세바가 다윗과 동침을 하고 그 부정함(간음)을 정결케 하는 종교적 의식으로 물로 씻은 후에 자기 집으로 갔다는 번역이 옳다. 성경은 성경으로 풀어야 한다. 성경은 남녀가 부정하게 동침하여 설정을 하였을 경우 남녀 둘 다 물로 몸을 씻어야 한다(레15:16-18)고 기록하고 있다. 또 여자가 경수(월경)가 있을 때 부정하게 되는데 경수가 시작하는 날부터 7일과 그리고 경수가 끝나는 날로부터 7일간 부정하게 된다고 말해준다.(레15:19-33). 밧세바가 후자의 경우로 경수 때문에 동침 전에 몸을 씻었다(우리말 성경)고 본다면 아이를 갖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동침 전에 몸을 씻었다는 것은 인간적인 면에서 자신들의 성교를 위해 몸을 씻는 일이 되어진다. 그러나 성교 후에 몸을 씻음은 종교적 의식으로 분명히 성결케하는(Purify) 의식이며, 이는 성경적으로 영적으로 의미를 갖는 것이다.

그러므로 필자는 분명히 원문 순서와 대부분의 영어성경 번역이 옳다고 주장한다. 밧세바는 비록 이방인이지만 성경의 가르침에 순종했으며 죄로부터 성결해 짐을 바랬다. 우리가 아무리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교회를 충성으로 섬기는 자라 할지라도 우리는 죄를 범할 수 밖에 없는 연약한 자들이다. 우리는 이 때마다 다윗왕의 요청에 불응할 수 없었던 밧세바와 같이 즉시 우리의 죄를 씻는 회개의 눈물을 가져야 한다. 매일 우리의 연약한 부분을 교정해 나가는 회개와 성결의 삶을 살아가는 믿음의 4번째 단계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바울은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라’(롬7:24)고 고백했고, 예수께서 베드로의 발을 씻어 주셨던 것이다. 우리 유리함으로 눈물의 수치가 주의 책(생명책)에 기록되어짐(시56:8)을 명심하자.

5. 예수의 모친 마리아: 겸손, 순종, 온전함에 이르는 신앙의 마지막 단계
마리아는 나사렛에서 자라난 여인이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요1:46)”고 나다나엘이 말했듯이 나사렛은 도덕, 윤리적으로 평판이 좋지 않는 마을이었다. 이러한 마을에서 자랐지만 마리아는 참으로 순결했다. 마치 쓰레기장에서 한 송이의 아름다운 향기를 날리는 백합화가 같이 순결한 여인이다. 그러기에 그녀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요(눅1:28),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은혜가 보여졌다(눅1:30).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들은 누구나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고 있음이 보여져야 한다. 이는 그 삶에서 겸손과 순종과 온전함에 이루어가는 모습이 보여져야 한다는 말이다. 바로 마리아는 이 은혜를 갖춘 여인이었다. 마리아는 자기의 생명에 위험이 있을 수도 있는 상황이 전개될 수 있지만, 천사의 지시하심에 “주의 계집종이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눅1:30)”라고 말한다. “주의 계집종”이란 표현에서 그녀의 겸손,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에서 말씀에서 그녀의 온전한 순종을 볼 수 있다.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그 계집 종의 비천함을 돌아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눅1;46-48)라고 구주로 인해 기뻐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신앙의 온전함을 증명해 주는 신앙의 마지막 단계를 말해 주고 있다.

이와 같이 예수 탄생 족보에 나온 다섯 여인들은 성경의 진실함과 믿음과 은혜로 인하여 구원을 얻게 됨을 증명해주며, 더 나아가 우리 각자가 주 안에서 거룩함과 온전함에 성화를 이루게 됨을 표적(Sign)으로 말씀해 주고 있다. 이 여인들은 그리스도 예수의 탄생을 준비했던 자들이며 슬기로운 믿음의 여인들이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이제 머잖아 홀연히 심판의 주로서 재림하게 된다. 마태복음 25장에 기록된 미련한 다섯 처녀와 슬기로운 다섯 처녀를 비유를 보자. 미련한 처녀들은 등은 준비되었으나 등에 기름이 없어진 줄 모르고 잠에 취해 있다 혼인잔치에서 제외되었다. 슬기로운 5처녀는 깨어 기름을 준비하며 등불을 켜고 신랑을 기다리다가 혼인잔치에 참여하게 되었다, 계시록 19장에는 어린양의 혼인잔치가 열려진다. 그때 음녀들은 심판을 받게 되지만 빛나고 깨꿋한 세마로를 입은 성도들은 어린양 혼인 잔치에 참여하는 영광을 얻게 된다.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도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어진다(마5:18). 과연 나는 구원받은 성도인가? 그렇다면 신앙의 어떤 단계에 있는 자인가? 그리고 내 집(가족 친족 친지)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성경에서 질문이 있으시거나 이 글을 읽다가 의문된 것이 있으시면 atlantabc@gmail.com으로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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